산행기

설악산 공룡능선(오색-대청봉-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 산행기

산벗 2005. 8. 7. 11:34
 

2005년7월29일 밤 11시 성남 복정역 1번 출구에서 설악산을 향하는 안내 산악회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산행은 오색약수~대청봉~소청봉~희운각~무너미고개~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 코스다.


공룡능선은 희운각 대피소 앞 무너미 고개에서 마등령까지의 5.1Km구간을 가리키는데 외설악과 내설악을 동서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 능선으로서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하여 공룡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며, 그 이름만큼이나 기이한 첨봉과 피라미드 같은 삼각봉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백두대간상의 가장 화려한 능선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 공룡능선은 거리는 5~6km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기봉과 기봉 사이에 Up~Down이 심하여 설악산에서는 가장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코스중 하나로 이 능선을 타지 않고서는 설악산 산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산행코스다.


그래서인지 버스안의 30여명이 넘는 등산객 중에 공룡능선을 탈 사람은 나 이외에는 한명도 없었다. 모두들 대청봉을 넘어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한 사람들 이었다.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내쳐 마음을 고쳐먹고 단독 산행이라도 강행하기로 하였다.

버스 안에서 눈을 부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 벌써 한계령을 넘어 오색이다. 7월 마지막 주말인 피서 절정기임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3시간여 만에 도착한 것이다. 등산화를 조여매고 헤드랜턴을 점검한 후 차에서 내리니 산속 특유의 시원한 내음이 폐부로 스며든다. 오색의 남설악 매표소 앞에는 벌써 두어 대의 관광버스에서 쏟아낸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매표소 앞에서 등반대장은 공룡능선을 넘으려면 희운각 대피소를 늦어도 오전 7시 이전에는 통과 해야만 설악동에서 출발시간인 오후 3시를 지킬 수 있음을 수차 강조하며 나를 제일 먼저 통과 시킨다. 그때 시간이 오전 2시30분. 아침요기 시간을 감안하면 대청봉까지(5km 정도이지만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심한 오르막임) 3시간, 대청에서 희운각 까지는 1시간 이내에만 운행하면 희운각을  7시 이내에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동안 수차례 새벽에 대청봉에 올랐지만 한 번도 일출을 보지 못한 한을 풀고자 일출 시간이 5시10분대라는 등반대장의 말에 대청봉까지의 운행시간을 2시간40분 이내로 단축하기로 마음먹고 헤드랜턴 불빛의 행렬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2~3개의 산악회원들이 동시에 산행을 시작하는 바람에 산행속도가 느려진다. “미안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를 연발하며 추월하기를 30여분. 이제 앞의 후레쉬 불빛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고독을 벗 삼아 머리를 쑤셔 박고 발끝만 쳐다보며 한참을 오르다 보니 설악폭포다. 작년 6월에는 여기어디선가 장 청소(?)도 하고 일행들과 함께 폭포아래 물속에서 설악산 정기(?)도 받으며 한참을  쉬어갔던 곳이지만 그때의 추억을 곱씹으며 내쳐 오른다. 아주 길게 느껴지는 나무계단을 가쁜 숨 몰아쉬며 힘겹게 오르니 어느새 대청봉이 1.3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산꾼들이 반갑다. 그들과 산 인사를 나눈 후 나도 처음으로 바위 턱에 주저앉아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 그대로 누워 자 버렸으면..... 그러나 그 바램도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먼저 쉬고 있던 산꾼들이 일어난다. 혼자 가는 것 보다는 같이 가는 것이 좋을 듯싶어 나도 따라 일어섰다. 잠시 쉬었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한결 가뿐하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나무의 키가 작아지는 것이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음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올라가니 또 한 무리의 산꾼들이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 앉아서 일출을 보려면 아직도 한참을 남았으니 올라가봐야 춥기만 하다며 우리에게도 쉬었다 가기를 권한다. 나도 대청봉 바람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일단 쉬기로 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배낭에서 윈드자켓을 꺼내 입었다. 초코릿 한조각과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잠시 쉬는 동안 자켓을 걸쳤음에도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느껴진다. 앉아 있는 것 보다는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배낭을 챙겨 출발하니 이내 몇 사람이 따라온다.

잠시 후 나무가 하나도 없는 탁 트인 언덕이 나오면서 바람이 더욱 세차게 몰아친다. 정상이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간신히 정상석을 붙잡은 시간이 4시45분. 그동안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오른  시간 중 제일 빠른 2시간15분이 소요 되었다. 50이 다된 나이에 이만한 체력을 가졌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기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정상 직전부터 잠시 동행한 산꾼 일행들과 정상석을 배경으로 각각 몇 차례의 기념촬영을 마친 후, 바람을 피하여 바위 뒤에서 그 일행들이 권하여 함께 나눠 마신 몇 잔 포도주의 황홀한 맛은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직 해 뜰 시간은 조금 남았지만 흐리고 안개가 끼어있어 이번에도 일출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천불동으로 하산한다는 그 산꾼들을 뒤로 하고  5시경 아쉽지만 바로 희운각으로 출발하였다.


중청 대피소를 그대로 지나친 후 소청 갈림길에서 희운각으로 향하는 급경사 길을 내려가는데 화채봉 위로 떠오른 태양이 구름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빛에 연하게 물든 구름과 파란하늘 그리고 빨간 태양이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장면이었다.

6시10분을 조금 넘긴 시간 희운각에 도착하니 여러 무리의 산꾼들이 아침을  해결 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탁자에 앉아 혼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 옆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간 떡과 토마토로 아침을 때웠다. 50 전후로 보이는 내 옆의 사람은 오색에서 3시쯤 출발 했다는데 희운각에는 먼저 와 있다. 산행도중 나를 앞지른 사람은 없었는데 아마 대청봉에 있을 때 지나간 모양이다. 참 대단한 산꾼이다. 발 가는대로 하산하려 했다는 그와 공룡능선을 동행하기로 하고 6시30분쯤 희운각을 출발 하였다.

초행길이라 단독산행이 다소 부담되던 나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무너미 고개에 올라서니 우측으로는 천불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공룡능선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온다. 기상상태가 좋지 않으면 산행을 삼가라는 경고표지판이 서있는 능선으로 직진하여 좌측 안부로 돌아 급경사를 힘겹게 오르니 신선봉이다. 역시 세차게 부는 찬바람에 바위를 붙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천상이 따로 없다. 삐죽삐죽 도열하듯 서있는 첨봉들의 호위를 받으며 우뚝 솟아있는 공룡능선의 대표적 봉우리인 1275봉과 나한봉, 그 아래로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듯 서있는 범봉과 천화대, 그 사이사이 보이는 단애와 절리, 기묘한 암봉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름답다 못해 자연의 경이로움에 숙연해 진다. 이러한 장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오른 자만의 특권이 아닐지.....

그 기막힌 장관을 카메라에 담고 서둘러 신선봉을 내려서서 다시 급한 오르막을 헐떡거리며 이름 모를 두 번째 봉우리에 막 올라서는 순간 헉! 왼쪽 허벅지 근육이 순식간에 뭉친다. 쥐가 오른 것이다. 큰일이다. 이제 능선 초입인데..... 다리를 끌고 간신히 바위에 걸터앉아 등산화를 벗고 전에 산행에서 어느 무술가가 알려준 대로 조그만 돌을 골라 발바닥 가운데에 놓고 올라서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금방 거짓말처럼 뭉친 근육이 풀린다. 휴~ 다행이다. 동행하던 산우가 건네주는 파스를 붙인 후 다시 등산화를 조여 매고 씩씩하게 출발한지 10여분. 아뿔사! 이제는 왼쪽뿐만 아니라 오른쪽 허벅지도 뭉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대청봉에 오를 때 너무 무리 했었나 보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동행하던 산우를 먼저 보내고 그냥 주저앉아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사혈침으로 허벅지를 여기저기 찔러 피를 내니 좀 풀리는 듯하다. 희한한 것은 침으로 찌르는데도 오히려 시원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풀고 출발 하려고 양 허벅지를 계속 주무르고 앉아 있노라니 그때서야 뒤에 오던 한 팀이 지나간다.

그 이후에도 양 허벅지 근육이 뭉쳤다 풀렸다 하기가 수없이 반복되며 릿지 수준의 직벽에 가까운 바위도 넘고 폭포의 물이 마른 듯한 긴 바위 골도 기어오르면서 정신없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275봉 나한봉을 넘어 좌측으로는 오세암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있는 마등령에 다다랐다.

그동안 쥐가 날 때마다 허벅지도 수없이 찌르면서 무릎이 아프다며 나보다 더 힘들게 오르던 어느 젊은이의 스프레이 파스를 얻어 뿌려가며 오로지 이 능선을 빠져나가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일념에 주변의 그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비몽사몽간에 공룡능선 5.1km를 드디어 빠져나온 것이다.


그곳에서 잠깐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에 아직도 피어있는 야생화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거의 굳어 가는 다리를 끌다시피 마등령 능선의 오르막을 조금 오르자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여러 무리가 쉬고 있는 마등령 정상(실제 정상은 조금 위)이 나온다. 직진하면 저항령 황철봉 미시령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은 비선대로 향하는 길이다.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허벅지는 앉기도 힘들 정도로 더욱 뻣뻣해진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등산화를 벗고 한참을 주무르니 조금 나아진 듯하다. 이제 긴장도 풀리고 통증도 조금 가라앉은 탓인지 허기가 돈다. 빵과 과일이 꿀맛이다. 간식도 하고 생리현상도 해결하고 앞에 있는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경치도 감상하며 사진도 찍는 등 한참을 쉰 다음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도중에도 허벅지의 통증이 반복되기는 하였지만 공룡능선 탈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이제는 우측의 공룡능선의 절경도 눈에 들어온다. 공룡능선에서는 춥게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햇볕의 따가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더위도 느껴진다. 고도가 많이 낮아진 것 같다.

허벅지의 통증이 점점 심해질 무렵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커다란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이다. 우측에는 절벽과 소나무가 반복적으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아래로는 천불동 계곡이 저 멀리 보인다. 이제 이 장군봉만 돌아 내려가면 비선대다.

장군봉에 매달려 암벽등반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금강굴 입구를 지나 마지막 힘을 다하여 돌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니 11시20분 드디어 비선대다.

아~ 이제 살았다. 비선대 계곡물에 발을 담구고 앉아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는 피서객들을 보니 해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허벅지의 통증도 말끔히 없어진 듯 가뿐하다.

발걸음도 가볍게 조금 더 내려가 등반대장이 지정해준 비선대 상가지역에  있는 이쁜이 집을 찾아가니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아직 한명도 내려오지 않았단다. 하긴 아직도 서울 출발시간이 3시간 반 이상이 남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어찌되었건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인 산의 정기(?)를 받지 않을 수는 없는지라 그 집에 배낭을 벗어놓자마자 상가아래 은폐된 계곡을 찾아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계곡물에 몸을 던졌다. 신선이 따로 없다. 지금까지의 힘겨웠던 산행과정이 한순간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바뀌며 고통의 기억은 말끔하게 사라진다. 이것이 산행의 묘미이리라.

한참을 물속에 앉아서 몸을 식힌 후 땀에 절여진 옷을 갈아입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들이 키니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부러울 것이 없다.

조금 후 버스에서 내 앞자리에 앉았던 대청봉에 오르는 컨디션을 보고 괜찮으면 나랑 공룡능선 길을 동행하겠다던 산우가 도착하여 같이 냉면 한 그릇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설악동 소공원으로 내려와 버스에 탑승함으로써 장장 비선대까지 9시간, 소공원까지 10시간 동안의 긴 산행을 마감 하였다.

이번 산행은 나에게 겸손의 가치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고마운 산행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다.

처음 등반대장의 재촉의 말만 없었어도 또 처음 근육이 뭉쳤을 때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만 했어도 그 고통 속에서 그 환상적인 절경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내려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나 조만간 다시 오리라. 그때는 이번산행을 거울삼아 유유자적하는 마음으로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를 한껏 즐기며 호연지기를 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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